ETC 2

까치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그늘을 들어낸 자리에 까치들이 집을 짓는지 깍깍깍 소리가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반쯤 지어진 까치집을 보면서 저걸 까치집이라 해야 할지 아직은 아니라 해야할지 잠시 생각한다. 울산 할머니집에 가는 길, 고속도로 양쪽의 앙상한 겨울나무에는 까치집이 참 많았었다. 기나긴 고속도로에서 지루함을 달래는 방법을 찾다가 우리는 까치집을 세곤 했다. 누나는 왼쪽 나는 오른쪽. 정신없이 까치집을 세다 보면 어느새 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질때면 전봇대 끝 변압기들이 꼭 까치집처럼 보여서 모른 척 한 두개쯤은 까치집으로 세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까치집이 한 세개쯤 지어져 있는 앙상한 나무를 찾아내는 짜릿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었기 떄문에 어쨌든 우리는 ..

ETC 2023.10.18

추천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저 추천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오랜만에 찾아온 A가 비로소 말을 꺼냈다. 조만간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친구여서 아쉬움이 명치 끝을 살짝 스쳤지만 찰나의 고민 끝에 ‘그럼’ 이라고 대답했다. 이럴 때면 ‘대체 어떤 말로 추천서를 채워야 하지?’에 대한 걱정이 종종 앞서곤 하는데, A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의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A와 같이 일하고 싶었던 많은 이유들 중에서 한 두개를 골라야 했으니까. 어쨌든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A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친애하는 B에게’로 시작하는 추천서에 2020년 여름에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갔다. 코로나 치료제 개발 과제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같이 일하던 특허법인과의 첫 미팅에서..

ETC 20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