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추천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diruna 2022. 11. 20. 19:44

 

 

 

‘저 추천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오랜만에 찾아온 A가 비로소 말을 꺼냈다. 조만간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친구여서 아쉬움이 명치 끝을 살짝 스쳤지만 찰나의 고민 끝에 ‘그럼’ 이라고 대답했다. 이럴 때면 ‘대체 어떤 말로 추천서를 채워야 하지?’에 대한 걱정이 종종 앞서곤 하는데,

A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의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A와 같이 일하고 싶었던 많은 이유들 중에서 한 두개를 골라야 했으니까. 어쨌든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A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친애하는 B에게’로 시작하는 추천서에 2020년 여름에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갔다.

 

코로나 치료제 개발 과제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같이 일하던 특허법인과의 첫 미팅에서 우리 기술을 간단하게 소개할 필요가 있었고, A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게 되었다. 발표 전날 밤 A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죄송하지만 이대로 발표해도 될지 방금 보내 드린 자료를 한 번만 더 검토해 줄 수 있는지 A가 물었다. ‘자료는 이미 보내줬었는데?’ 갸우뚱하며 메일을 확인했다. 파일을 열어 슬라이드쇼를 실행하는데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C사의 A입니다.’

 

내일 진행할 발표가 A의 목소리로 슬라이드에 동봉되어 있었다. (약 15분 정도 분량의 발표를 흠잡을 곳 없이 레코딩하는데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지는 직접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잘 정리된 스크립트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대략 발표시간의 10배 정도의 시간이 추가로 필요한 작업이다.) 발표는 흠잡을 곳이 없었고 미팅 역시 잘 진행되었다.

 

추천서를 적어 내려가면서, 그리고 약 7년간의 회사생활과, 5년간의 연구실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A 정도의 책임감과 진지함을 가진 스태프와 일하는 것이 얼마나 드문 경험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나 일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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