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까치

diruna 2023. 10. 18. 19:13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그늘을 들어낸 자리에 까치들이 집을 짓는지 깍깍깍 소리가 하루종일 시끄러웠다.
반쯤 지어진 까치집을 보면서 저걸 까치집이라 해야 할지 아직은 아니라 해야할지 잠시 생각한다.

울산 할머니집에 가는 길, 고속도로 양쪽의 앙상한 겨울나무에는 까치집이 참 많았었다. 기나긴 고속도로에서 지루함을 달래는 방법을 찾다가 우리는 까치집을 세곤 했다. 누나는 왼쪽 나는 오른쪽. 정신없이 까치집을 세다 보면 어느새 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질때면 전봇대 끝 변압기들이 꼭 까치집처럼 보여서 모른 척 한 두개쯤은 까치집으로 세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까치집이 한 세개쯤 지어져 있는 앙상한 나무를 찾아내는 짜릿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었기 떄문에 어쨌든 우리는 차만 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홀린듯 까치집을 찾곤 했다.

무성한 나뭇잎이 까치집을 숨겨주는 여름도로에서는 까치집 대신에 빨간 티코를 세기도 했는데 빨간 티코가 까치집만큼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지루함을 달랠 또 다른 놀이가 필요했다.

다음으로 찾아낸 놀이는 일종의 자동차 경주였다. 우리 차가 다른 차를 앞지르면 1점. 다른 차가 우리를 앞지르면 -1점. 안전운전을 하셨던 아빠 때문에 점수는 늘 - 였고, 왠지 모르게 +가 되고 싶었던 나는 휴게소를 하나 지날때마다 100씩 더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휴게소 주차장에는 차들이 100대도 넘게 있었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꽤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계산법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이 다 되면 할머니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 동네 입구에서는 맹꽁이 소리,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났었고 할머니 집에서는 담배냄새와 약간은 퀴퀴한 흙냄새, 아궁이에서 나무를 태우는 냄새 그리고 풀 냄새, 바다냄새가 났다.
오래된 상가건물 계단을 오를때 나는 냄새가 바다냄새를 뺀 할머니집 냄새와 참 비슷해서, 언제라도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층계참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있었던 적이 꽤 여러번이었다.

할머니의 밥상에는 늘 콩잎이 있었다.
고2때 급하게 울산에 내려갔던 이후로는 한번도 못 먹어본 새빨간 콩잎.
그 해 겨울도로에는 이상하리만치 까치집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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